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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5주년 기념 특별전 <안중근 書>

전시기간 : 2024.10.24.(목) ~ 2025.03.31.(월)

장 소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관람료 : 무료

  • 관람시간 : 10:00 - 18:00 (수, 토: 오후 9시까지 야간개관)
  • 관람문의 : 02-3703-9200

전시를 열며


1909년 10월 26일,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지키기 위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가 있었습니다. 115년이 지난 지금에도 안중근 의사의 정신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안중근의사숭모회, 안중근의사기념관과 공동으로 <안중근 書> 특별전을 마련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교육가이자 의병이었으며, 격동의 시대에 끊임없이 고민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씨(遺墨)를 통해 교육자로서, 군인으로서, 사상가로서 안중근 의사의 삶과 사상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의거 이후 1910년 2월부터 3월까지 순국을 앞두고 여러 글씨를 남겼습니다. 글씨에는 독립에 대한 의지, 동양평화 사상 등 안중근 의사의 올곧은 정신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전시는 안중근 의사의 글씨와 관련 기록을 안중근 의사의 어린 시절 이름인 응칠(應七)을 본 따 일곱 가지(七) 이야기로 구성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로 독립을 염원했던 안중근 의사의 치열했던 삶과 의지, 사상을 함께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안중근 生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삶은 교육을 중시하고 신앙심이 깊었던 가풍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글씨에서 안중근 의사의 교육에 대한 가치관과 천주교인으로서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가문 1910년 3월 안중근 의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독립에 대한 의지는 가족에게 이어졌습니다. ‘소년 안응칠’이 ‘의사 안중근’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안중근 의사뿐만 아니라 많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낸 가풍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안중근 전시회 관련내용
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
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
“황금이 백만 냥이라도 자식에게 하나를 가르침만 못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보물 무연탄 이미지
두 번째 이야기) 신앙 천주교에 대한 신앙심은 안중근 의사의 일생에서 중요한 가치 중 하나였습니다. 도마(Thomas)라는 세례명도 받았는데, 안중근 의사는 천주교인이 된 이후 일생을 도마 안중근으로 살았습니다.
안중근 전시회 관련내용
천당지복 영원지락
天堂之福 永遠之樂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 안중근의사숭모회 무연탄 이미지
안중근 義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어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글씨에는 교육가로서, 의병으로서, 장부로서, 지사로서 위태로운 시대를 극복하려 했던 굳건한 마음이 녹아 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 애국 1905년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강탈되는 모습을 보며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르 각 신부를 만나 실력양성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내로 돌아와 애국계몽운동가로 성장하였습니다.
안중근 전시회 관련내용
국가안위 노심초사
國家安危 勞心焦思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안중근의사숭모회 | 보물 무연탄 이미지
네 번째 이야기) 의병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어 군대가 해산되고 고종이 폐위되자 안중근 의사는 연해주로 향했습니다. 연해주에서 안중근 의사는 의병으로 변모하였습니다. 흩어져 있던 연해주 지역 한인들의 민심을 모으고 훈련하여 국내진공작전을 펼쳤습니다.
안중근 전시회 관련내용
위국헌신 군인본분
爲國獻身 軍人本分
나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안중근의사숭모회 | 보물 무연탄 이미지
다섯 번째 이야기) 동지 국내진공작전에 실패한 이후 안중근 의사는 뜻을 같이할 동지들을 모았습니다. 안중근 의사 자신을 포함한 12명의 동지를 모아 단지동맹을 결성했습니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북만주를 시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와 뜻을 모아 의거를 결심하고 하얼빈으로 향했습니다.
안중근 전시회 관련내용
장부수사심여철 의사림위기사운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그 마음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그 기풍 구름 같도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 보물 무연탄 이미지

독립
안중근 전시회 관련내용
독립
獨立
일본 간센지(願船寺) 소장 | 류코쿠대학(龍谷大學) 수탁 무연탄 이미지
안중근 思
안중근 의사에게 글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동양평화 사상을 설파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글씨에는 스스로를 희생하여 인을 이루는 지사의 마음으로 하얼빈 의거를 준비한 안중근 의사의 철학과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여섯 번째 이야기) 동양 1909년 10월 26일 아침, 하얼빈 역. 안중근 의사는 국권을 강탈하고 동양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 제국주의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동양을 보호한다며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동양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의거를 결행하였습니다.
안중근 전시회 관련내용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강개 정략불개진가련
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豈安眠
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두우니 뜻있는 사나이가 편한 잠을 어이 자리. 평화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분개한지고. 정략을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가엾도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 보물 무연탄 이미지
일곱 번째 이야기) 평화 하얼빈 의거 직후 일본은 러시아령 하얼빈에서 자신들의 관할구역인 뤼순으로 재판정을 옮겼습니다. 그럼에도 안중근 의사는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외치며 치열하게 법정에서의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대한국인 안중근’은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글(書)로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습니다.
안중근 전시회 관련내용
지사인인 살신성인
志士仁人 殺身成仁
지사와 어진 사람은 자신을 희생하여 인을 이룬다. 안중근의사숭모회 | 보물 무연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