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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피난민촌 재건 기념 흙손
자료형태 생활물품/기타 시대/연도 광복~1950년대 / 1954.1.4.
규격 8.5*4.0*2.5Cm
한줄설명 1953년 부산역전대화재(釜山驛前大火災) 복구 작업에 참여한 미군에게 헌정한 은제 흙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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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란의 막바지, 종전이 선포되던 1953년의 부산은 유난히도 크고 작은 화재사건이 많았다. 그중 11월에 발생한 소위 부산역전대화재(釜山驛前大火災)’라 불리는 사건은 피해 규모가 상당하였다. 같은 해 130일에 발생한 부산국제시장대화재(釜山國際市場大火災)’ 이후 10개월 남짓한 사이에 또다시 발생한 대형 화재사건으로 당국도 부산시민들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19531127일 오후 7시경 부산 영주동 판잣집에서 발생한 화재는 초속 15m의 북동풍을 타고 일대의 판잣집을 전소시킨 뒤 다음날 오후 7시까지 무려 12시간 동안 불타올랐다. 부산역 서편 40계단을 중심으로 영주동·중앙동·대청동·동광동 등 당시 부산시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 약 6만여 평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한미합동소방대의 필사적인 소화 작업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도심을 휩쓸었는데, 그 기세가 맹렬하여 긴급 출동한 소방차 2대를 삼킬 정도였다. 영주동 가정집의 풍로 불이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으며, 피난시민 증가에 따른 인구팽창과 전후의 혼란한 상황, 생활의 타성 등도 간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미증유의 대화재는 3천여 동의 주택을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이재민 6천여 세대 3만여 명, 사상자 30여 명, 물적 손해 약 130억 환이라는 대참극을 가져왔다. 또한 당시 중앙동에 있던 부산역을 비롯하여 부산철도국, 부산방송국, 부산우체국, 부산일보 등 주요 건물들과 호텔, 회사, 개인 건물들까지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1월의 부산국제시장대화재가 2천여 동의 건물을 태우고 약 150억 환의 물적 피해를 남겼던 터라, 부산역전대화재는 다시 한번 화마의 충격을 안긴 대사건이었다.

부산시를 재건하고 이재민을 구호하기 위해 한미합동경제위원회 임시구호분과위원회가 개최되어 사태 수습을 위한 결의가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한미합동소화 및 복구 작업이 실행되었다. 미 극동군 총사령관 헐(John Edwin Hull, 1895~1975) 장군의 특별명령으로 미8군 사령관 테일러(Maxwell Davenport Taylor, 1901~1987) 장군의 책임 하에 복구 및 구호작업이 진행되었는데, 현지 지휘는 부산지역 군수사령관 위트컴(Richard Seabury Whitcomb, 1894~1982) 장군이 담당하였다. 당시 테일러는 미8군의 물자와 시설을 이용하여 복구와 구호활동을 병행할 것이라 하였는데, 구호물품(레이션·의료품·의류 등)을 배부하고 공병대를 동원하여 화재지역을 정리한 후 항구적인 화재방지와 도시계획을 고려한 복구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한미공병대가 협력하여 복구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부상자는 시립병원과 경찰병원, 부두창고 등에 수용하여 치료를 병행하는 한편 일반 이재민들은 괴정동 등지에 천막사를 가설하여 수용하였고, 각 학교와 극장에도 임시로 수용하였다. 국내외 구호의 손길도 끊이지 않았는데 의연금·의약품·생활용품 등이 공급되었고, UN의 무대 등 국내외 단체들의 의료봉사와 식량배급이 지속되어 구호활동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번에 소개하는 자료가 당시 화재 복구 작업에 참여한 미군에게 증정한 은제 소형 흙손이다. 부산역전대화재 이재민을 위한 미군의 구호활동에 감사하는 내용이 아래와 같이 새겨져 있다.

 

“Dedication of First U. S. Army Korean House for Pusan City fire refugees 4 Jan. 1954”

 

195414일 오후 2시 양정동 건설부지에서 내무부차관, 경남지사, 위트컴 장군 등 관민(官民)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화재 이재민 등을 위한 주택1만호재건계획 기공식이 거행되었는데, 당시 기공식에서 감사의 표시로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화재의 중심이었던 부산역 일대(중앙동)에는 현재 옛부산역 터라는 표지석이 세워져있다. 당시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교훈을 현장에 기록하고자 부산 중구청에서 201812월에 표지석을 세웠는데, 전후(戰後) 부산의 도시계획과 건축에 영향을 미친 화재의 내용과 구호에 힘쓴 위트컴 장군의 이야기가 담겨 그날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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