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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원 사진엽서 / 창경원의 벚꽃
자료형태 우편 시대/연도 일제강점기(1910~1945) / 1920
규격 14.1*9.0
한줄설명 삼중여관(三重旅館)에서 발행한 창경원의 벚꽃 사진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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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원 사진엽서

 

이번에 소개할 소장품은 창경원 사진엽서이다. 소장품의 앞면에 창경원(현재 창경궁)에 만개한 벚나무와 꽃을 구경하는 사람의 모습이 인쇄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CARTE POSTALE', '郵便はかき', '京城·昌慶苑', '京城驛前 三重旅館' 이 인쇄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경성역 앞에 세워진 숙박시설인 삼중여관(三重旅館)1920~30년대에 발행하여 관광 상품으로 판매한 사진엽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4월은 다양한 꽃들이 개화하는 달,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벚꽃의 개화기이다. 벚꽃 하면 특히 봄꽃축제를 개최하는 여의도 윤중로가 떠오른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창경궁(昌慶宮)이 서울의 벚꽃 명소 중 하나였다. 궁궐에서 벚꽃놀이를 즐기게 된 이유에는 일제강점기의 가슴 아픈 사연이 얽혀있다. 1909년 일제는 순종에게 즐길 거리를 만들어 준다는 명목으로 창경궁 건조물들을 철거하고 내부에 동물원 식물원을 만들었다. 1911426일 일반 시민용 위락지로 창경궁을 개방하면서 창경원(昌慶苑)’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이후 일제는 창경원, 창덕궁, 경복궁에 벚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심어진 벚나무는 10년 동안 벚꽃놀이를 할 만큼 성장하였고 1924년 창경원의 야간개장이 허용되어 밤 벚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이달의 소장품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야간개장의 상징인 황금색 전등이 길게 늘어져 있고 벚나무에는 벚꽃의 아름다움을 더해 줄 색색의 등불들이 매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짝이는 전등만큼이나 밤 벚꽃놀이는 성황을 이루었고 반대로 권력의 공간이었던 창경궁은 일탈과 유흥의 장으로 전락하여 왕권과 왕실의 상징성이 격하되었다.


창경원 동물원의 울타리를 이룬 벚꽃 가지에꽃봉오리가 맺기 시작해마다 꽃이 필 때마다 밤에도 열어달라는 여론이 많았다금년 봄 벚꽃이 만발하는 2~3주 야간개장하고 수천개의 전등을 장식할 계획(동아일보 1924. 3. 11.)

 

밤벚꽃의 짧은 시간을 흥에 겨워 뛰놀자는 풍류객(?)들이 삐루(맥주)와 월계관(정종)을 밀수입하야 부어라 먹자하며 창경원이 좁다 하고 떠든다. (동아일보 1935. 4. 12.)

 

1981년 정부는 일제가 유원지로 만들어 버린 창경궁을 복원하기로 하였고 1983, 70여 년간 이어진 창경원의 밤 벚꽃놀이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심어진 벚나무 또한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볼 수 있어 사회적 논의가 있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추억 또한 담긴 나무이었기에 창경원벚나무의 대부분은 여의도와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다.

 

창경원 벚꽃 남겨두나 없애나 궁 복원 완공을 앞두고 600그루 처리 양론일제 잔재 남기면 복원 취지 위배시민의 오랜 명소 일부는 남겨야(동아일보 1986. 4. 21.)

 

나무나 식물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든 이념과 뜻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뿐이라지만 올해 꽃놀이에는 벚꽃이 어떤 역사와 사연을 가지고 오늘날 우리와 마주하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보며 색다른 꽃놀이를 해보는 건 어떨지 권하여 본다.

 

 

 

 

참고문헌

 

이채원, 일제시대 여관업의 변화와 성격,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전우용, 잡동산이 현대사, 돌베개, 2023.

 

봄이 왓다! 봄이 왓다! 昌慶苑을 벗꼿필 때에 수주일 동안 밤에도 연다, 동아일보, 1924311.

창경원 벚꽃 남겨두나없애나, 동아일보, 1986421.

春塘池五色虹塔 花光月色無爲 夜櫻第一夜, 동아일보, 1935412.

 

서울문화포털, “여의도 봄꽃축제”, https://culture.seoul.go.kr/ (검색일 202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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