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정보 상세 : 소장자료 정보 상세를 보여줍니다.
영선서울피란국민학교 6학년 일기장 No.3
자료형태 문서 시대/연도 광복~1950년대 / 1951.09.
규격 13.6×19.2×0.5
한줄설명 6·25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란한 국민학교 6학년 학생의 1951년 9월의 일상을 담은 일기
자료 복사 자료열람/복제 신청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9월이 왔다. 학생들은 새로운 다짐으로 새 학기를 맞이하였을 것이다. 새로운 다짐의 단골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일기 쓰기이다. 일기는 개인의 내면과 시대의 흐름이 교차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시적이며 동시에 거시적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가을, 한 어린이가 그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70여 년이 흘러간 지금, 이 일기는 우리에게 그때의 사회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19506·25전쟁 발발 직후 정부는 부산을 임시수도로 지정하였고, 많은 피란민이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당시 서울혜화공립국민학교 학생이었던 일기 작성자 L군 또한 전쟁을 피해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하게 된다. 다행히도 L군은 부산 영선국민학교에 마련된 피란학교에 등록하여 전쟁 중에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여느 피란학교와 마찬가지로 L군의 학교도 교실과 물자가 부족하였다. 이에 L군은 가교사에서뿐만 아니라 천막이나 등대, 방파제에서 수업하기도 한다. L군은 천막 교실의 위생 상태를 지적하면서도, 바다의 잔잔한 물결과 시원한 바람이 야외 수업하는 자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였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1951년 하반기부터는 국어·산수·과학·사회생활 등 정규 교육이 시행되었다. 시험 공부와 시험 결과는 L군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거리였다. 시험을 보는 날에는 본인과 친구들의 시험 결과를 일기에 기록하였다. L군의 일과 중 대부분은 공부를 하거나, 공부하리라 다짐하거나, 공부를 못해서 걱정하다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한편 학교에서는 여전히 전쟁의 승리와 전후의 복구를 위한 전시 교육이 중시되었다. 다양한 과외 활동과 위문 활동, 시국행사 참여 등이 전시 상황에 맞춰 진행되었다. L군은 학교 내 1대대 1중대 2소대 3분대 2분단에 소속되었다. 교과 외 활동으로 진군가를 배우고, 공작 시간에는 태극기를 그렸다. 지리산에서 싸우고 계시는 경찰 아저씨에게 위문 편지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전쟁은 일상에도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L군은 등대에서 멀리 대마도(쓰시마섬)를 바라보다가 작년 오늘이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에서 총공격을 개시했던 날이었음을 문득 떠올렸다. 집에 돌아와서는 새로 개봉한 영화 <정의의 진격>(6·25전쟁 기록영화)을 관람하러 간다.

 

  어느 날 L군은 작년 이맘쯤이 국군과 유엔군이 공산군을 무찌르며 서울을 향하여 진격할 때였음을 상기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무시무시한 대포 소리를 들으며 사랑방에서 잠을 자던 순간을 생각하였다. 국군의 서울 탈환일을 계기로 동래에서는 육해공군 합동 장례식이 있었다. L군은 이날 따라 전쟁이 발발했던 해의 여러 기억이 떠올랐다.

 


  이 일기의 주인공인 이선호님은 2017년 상장·졸업장·표창장·임명장 등 개인의 일생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 161점을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 가운데 1951~55년 사이에 작성된 어린 시절의 일기장이 여러 점 포함되어 있고, 여기에서 소개한 것은 195191일부터 930일까지의 기록이다. 이 일기장은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 특별전 <그대는 아직도 여기에>(2024.07.27.~10.27.) 관람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이전 다음 게시물 : 제목 날짜를 보여줍니다.
▲ 이전글 오카야마사범학교(岡山師範學校)의 만선여행(滿鮮旅行)기념 사진첩 2024-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