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 전시 주제관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주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봅니다.

주제관1에서는 광복 이후 베스트셀러 현상들을 역사적·사회적 배경에 초점을 맞춰 살펴봄으로써, 당대의 시대상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조명합니다. 주제관2는 광고 속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 소비자, 상품, 시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사람들이 열망했던 가치를 살펴보는 실감형 영상 전시입니다.

주제관 1베스트셀러로 읽는 시대의 자화상

전시를 열며

글을 쓰고 읽는 행위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가운데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과 감정을 글로 남겨 다른 사람들과 나눕니다. 특정 시기에 가장 많이 팔린 책, ‘베스트셀러(best seller)’는 당시에 가장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동의하는 생각이나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 애쓰다 보면, 그 시대의 상황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번 전시에서 역사적‧사회적 배경에 초점을 맞춰 광복 이후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현상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베스트셀러는 저자나 출판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낳습니다. 베스트셀러 현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도, 사상, 그리고 일상생활에 이르는, 한 시대의 전체 모습을 비추어 줍니다. 대중들의 집단적인 욕구를 반영하는 ‘시대의 거울’과 같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러한 ‘시대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당시 우리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부최초의 베스트셀러, 밀리언셀러 -‘자유부인’과 ‘인간시장’

광복 이후 최초의 베스트셀러 『자유부인』
1954년 1월 1일부터 「서울신문」에 연재된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내용이나 인기 면에서 1950년대를 상징하는 작품입니다.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출간된 상권은 출간 당일 초판 3천 부가 매진됐습니다. 연재 완료 후 나온 하권까지 합하여 광복 후 처음으로 10만 부 이상 팔린 책이 됐습니다. 소설의 인기는 영화로도 이어져 1956년에 만들어진 첫 영화는 그해 흥행 1위에 올랐고, 1990년까지 여섯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한 대학교수 부인의 일탈을 그린 이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모 교수는 작가를 향해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라며 맹비난했고, 한 여성단체는 책 내용이 여성을 모욕하고 미풍양속을 해친다며 작가를 고발했습니다. 작품 안에서도 전근대적 가치와 서구적 생활양식이 뒤섞여 갈등하는 1950년대 사회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품을 둘러싼 논란을 통해서도 당시 사회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진정한 ‘시대의 자화상’입니다.

암울한 시대에 숨 쉴 곳은? 최초의 밀리언셀러 『인간시장』
김홍신의 『인간시장』은 1980년 「주간한국」에 연재되었다가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우리나라 출판 역사상 처음으로 밀리언셀러(million seller)가 됐습니다. 1부와 2부가 각 10권씩, 총 20권으로 이뤄진 이 소설은 첫 권이 나오자마자 10만 부가 팔렸고, 1부 7권이 발행된 1984년에 100만 부를 넘어서며 밀리언셀러가 됐습니다. 총 누적판매량이 560만 부를 기록했으니, “훈민정음 창제 이래 최고의 판매 부수”라는 당시 광고 문구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와 TV 드라마, 연극으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시장』이 누린 큰 인기는 책 내용이 시대 상황과 대중들의 집단적 열망과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점에서 진정한 ‘베스트셀러 현상’입니다. 온갖 부정과 불의의 현장에서 맨몸으로 악(惡)을 응징하는 주인공의 활약상이, 억압적인 현실에서 숨 쉴 곳을 갈망하는 대중의 정서를 자극했습니다. 어떤 이는 주인공 ‘장총찬’을 “현대판 홍길동이자 1980년대 초의 메시아”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때는 1980년 ‘서울의 봄’이 채 피어나기도 전에 신군부 세력이 민주주의를 짓밟으며 권력을 차지했던 시기였습니다.

2부산업화‧도시화의 그늘 - 경아, 영자 그리고 난쟁이

1970년대는 여러모로 그 전 시대와 달랐습니다. 청바지와 통기타, 생맥주로 상징되는 새로운 청년문화가 등장했고, 독서 시장에서도 ‘한글세대’가 주류로 자리 잡았습니다. 산업화에 따른 경제성장과 더불어 그 이면의 그늘도 짙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담아내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학작품들이 있습니다.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1973)을 필두로,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1974), 조해일의 『겨울여자』(1976)는 통속적, 상업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대중의 큰 지지를 얻으며 모두 영화로도 제작되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황석영의 『객지(客地)』(1971), 한수산의 『부초(浮草)』(1977),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은 또 다른 측면에서 1970년대 산업화의 그늘을 그려냈습니다. 이 모든 작품에서 산업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의 문제와 고뇌를 느낄 수 있습니다.

3부비판과 저항의 독서문화 - 금지된 베스트셀러

우리나라 독서문화의 흐름 가운데 시민들의 비판의식을 길러준 책과 책읽기는 중요한 하나입니다. 1960년 4‧19혁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잡지 「사상계」와 1970~80년대에 나온 많은 역사‧사회과학 서적이 그러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책이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사람들이 책을 읽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공식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했어도 대학가에서는 공공연한 베스트셀러로 대접받았습니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 구속된 출판인은 110명, 판매금지‧압수된 서적은 1,300여 종 약 300만 부에 이릅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오적(五賊)』(김지하, 1970년 발표),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1974) 등 유신정권 시절부터 판매 금지당한 서적 중 일부가 해금되었습니다.
1988년에는 납북‧월북 작가들의 해방 전 문학 작품에 대한 출판 허용 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4부성공을 향한 솔직한 욕망 - 어느 샐러리맨의 책장

현대 독서문화의 흐름 가운데 경제적‧세속적 성공에 초점을 맞춘 책읽기가 있습니다. 1960~70년대에도 경제‧경영서, 처세‧실용서 베스트셀러가 나오기는 했지만,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이러한 책들은 고도성장의 과실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1980년대부터 각광받았습니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는 등 이념이 퇴조(退潮)하고 자본주의화가 더욱 심화됐습니다. 대중의 관심은 민족‧국가‧이념‧사회에서 개인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실용서는 대중들의 확고한 독서경향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5부시대의 서가

광복 이후 시대별 주요 베스트셀러 현상을 이동식 투명디스플레이 장치를 통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Ⅰ : #광복 #우리 말, 우리 역사 #분단과 6‧25 #잡지의 시대>
<Ⅱ : #궁핍 #지적 허기 #에세이 #전집류 #주간지의 성행>
<Ⅲ : #산업화와 고도성장 #저항과 민주화 #문고본 #서정시 #대하소설>
<Ⅳ : #다양성 #탈권위주의 #PC통신, 인터넷 #경제위기 #위로>

전시를 마치며

책은 시대가 낳지만 한편으로는 시대에 영향을 줍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비판적 독서문화를 이끌었습니다. 경제적 풍요와 성공을 추구하는 대중의 욕망이 경제‧실용서, 자기계발서 읽기로 나타났습니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라는 큰 흐름이 독서문화에 영향을 끼쳤고, 사람들의 책읽기가 다시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거들기도 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이 책을 읽는 동기도 달라졌습니다. 1980년대의 비판과 저항의 독서문화는 1990년대 들어 이념이 쇠퇴하며 잦아들었습니다. 고도성장과 잇따른 경제위기 속에 영역을 넓히던 자기계발서는, 개인이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구조적 현실의 벽에 지쳐가는 사람들이 늘면서 부침을 겪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의 책읽기는 어떤 방향일까요? 책읽기와 우리 사회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게 될까요?
2000년대에 이르러 전자책(e-book)이 등장하자 ‘종이책’ 종말론이 분분했습니다. 아직은 전자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종이책의 장점들이 여전한 것 같지만, 언젠가 전자책과 같은 새로운 매체가 종이책을 완전히 대체하게 될 날이 올까요? 종이에 밀려 점토판(粘土板)이나 목간(木簡)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매체가 바뀌어도 글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인간의 행위는 계속될 것이라 말합니다. 글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행위는 인류가 생존하는 한 언제까지라도 계속될 수 있을까요? 글보다 영상에 더 친숙함을 느끼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고도 합니다. 그런 세대에게 글이란 조금은 다른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