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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청년단 단보 창간호 / 조선민족청년단 단보 창간호
자료형태 정기간행물 시대/연도 광복~1950년대 / 1947년 8월 1일
규격 26.8×43.0
한줄설명 1947년 8월 1일 조선민족청년단(朝鮮民族靑年團)에서 발행한 주간 단보(團報)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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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청년의 의지와 역량을 통일 집중하여 건국도상의 운동추진체가 되고자 조선민족청년단(朝鮮民族靑年團)이 결성되었다. 이범석(李範錫)장군을 단장으로 추대하고 시내 을지로(乙支路) 577번지에 사무소를 두고 착착 청년들의 힘을 규합 훈련하기로 되었다. -동아일보 19461012일자

 

194610월 미군정의 후원을 받으면서 결성된 조선민족청년단(朝鮮民族靑年團), 약칭 족청(族靑)민족지상(民族至上), 국가지상(國家至上)’을 슬로건으로 내건, 반공주의적 우익 청년 운동 단체이다. 강령인 단지삼칙(團旨三則)에는 우리는 민족정신을 환기하여 민족지상·국가지상의 이념 하에 청년의 사명을 다할 것을 기한다. 우리는 종파를 초월하여 대내자립·대외 공존의 정신으로 민족의 역량을 집결할 것을 기한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며 원대한 곳을 바라보고, 비근한 것부터 착수하여 건국 도상의 청년다운 순감(純感)을 바칠 것을 기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족청은 최고의결기관으로 전국위원회를 두었으며, 전국위원회에서 선임된 이사들로 구성된 중앙이사회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다. 그 밑에 도에서 면에 이르기까지 각 단위의 지방위원회와 지방단부가 조직되었으며, 각 단에 총무부, 조직부, 선전부, 훈련부, 연구위원회, 훈련소를 두었다.

1948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계기로 단명을 대한민족청년단으로 바꾸었고, 194811월 모든 청년 단체를 통합, 단일화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청년단체 통합이 추진되어, 1949년 대한청년단에 흡수, 해체되었다.

 

소개하는 자료는 족청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194781일 조선민족청년단에서 발행한 주간 단보(團報) 1호이다. 4면으로, 1면에는 '창간사', '훈사 : 신념에 살자-단장 이범석(李範奭)', '15만 단원을 얻기까지 본 단의 조직과 활동상황-조직부발표' 기사가, 2면에는 '훈련소의 한달-장준하(張俊河)', '지방소식 : 국기(國旗)는 올른다, 전남 각군단부 결성 호남지역에 환성(歡聲)이 충천', 3면에는 '주간시사 : 중앙훈련소 제6기생 입소, 파리와 모기를 박멸하자, 인도독립 법안통과, 대일강화예비회담(對日講和豫備會談), 공위(共委)의 협의대상', '논단 : 청년운동의 반성-조일문(趙一文)' , 4면에는 '문화: 청년예찬', '방송요지 : 젊은 여성들에게', ': 님이 원하시면-채송', '소설 : 별의 우정' 등의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동아일보 조선민족청년단결성, 1946.10.1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민족청년단(朝鮮民族靑年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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